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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개발

왜 허구가 진실을 이기는가? (feat. 유발 노아 하라리)

by MINK0903 2024.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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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허구가 진실을 이기는가? (feat. 유발 노아 하라리)
왜 허구가 진실을 이기는가? (feat. 유발 노아 하라리)

 

인류 역사상 허구의 스토리가 늘 진실을 이겼다. 사람들의 합리적 이성의 역량을 비활성화하는 것이 큰 비용이 들더라도, 사회 통합의 이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다. 수 천 년 간 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가끔 진실에 봉사할 것이냐 사회 통합에 봉사할 것이냐를 결정해야만 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허구를 믿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통합시킬 것인가, 아니면 분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어야 할 것인가?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입니다.

 

왜 허구가 진실을 이기는가?

[이스라엘의 역사가이며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어제 날짜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의 발췌입니다. 진실보다 거짓말이, 아니 거짓말일수록 더 힘이 있다는, 아이러니한 권력론이 재미있군요. 권력과 진실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 푸코의 권력론과 반대인 듯 하지만, 결국 같은 얘기입니다. 푸코도 진실을 독점한 자가 권력을 쟁취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현 집권 세력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실이 권력을 만든다고 믿는다. 종교 지도자나 이데올로기 지도자가 현실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그는 사람들의 불신을 받고 좀 더 통찰력 있는 경쟁자에게 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권력을 얻는 최상의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불행하게도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한 갓 신화에 불과하다. 실제로 진실과 권력 사이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간 사회에서 권력(힘)은 두 개의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우선 힘(power)이란 객관적 현실을 조작(操作, manipulate)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짐승을 사냥하고, 다리를 건설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원자탄을 제조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종류의 힘은 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짜 물리학 이론으로 원자탄을 제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힘은 또한 인간의 믿음을 조작(操作)하는 능력, 다시 말해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협동하게 만드는 능력을 뜻한다. 원자탄을 제조하는 것은 정확한 물리학 지식만으로는 되지 않고, 수백만 명의 단합된 노동이 필요하다. 지구는 침팬지나 코끼리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정복되었는데, 이는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게 대규모 협업이 가능한 포유류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협업은 공동의 스토리를 믿는 집단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공동의 스토리는 굳이 진실일 필요가 없다. 신(神), 인종, 경제에 대해 완전히 허구적인 스토리를 믿게 함으로써 당신은 사람들을 굳게 결속시킬 수 있다.

 

인간은 동물보다 훨씬 많은 진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동물보다 훨씬 더 비이성적인 진실들을 믿고 있다. 지구상의 동물 중에서 인간은 가장 똑똑하면서 또한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다. 토끼는 우주니, DNA니 하는 거창한 이론은 모르지만, 수 천 년 간 인류를 속여 온 신화적 환상이나 비이성적인 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하나도 믿지 않는다. 그 어떤 토끼도 내세에 72마리의 처녀 토끼를 보상으로 받는다는 희망 속에서 세계무역센터를 비행기로 자폭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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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스토리로 사람들을 결합시키려 할 때, 허구가 진실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 우선 진실은 보편적이어서 우리로부터 좀 멀리 있지만 허구는 국지적이어서 우리 가까이에 있다. 만약 우리 종족을 다른 이방인과 구별하려 한다면 허구의 스토리가 진실된 스토리보다 훨씬 더 확실한 정체성 표지(identity marker)가 될 것이다.

 

진실의 스토리를 믿는 것만이 정치적 충성도의 표지라면 이것은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주 값이 저렴하다. 그러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스토리를 믿는 것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고, 따라서 좀 더 큰 충성도의 표지가 된다. 어떤 지도자가 진실된 이야기를 할 때만 그를 믿는다면 그에 대한 충성도를 입증하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진실된 이야기는 믿으므로. 그러나 당신이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지도자를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높은 충성심인 것이다! 영리한 지도자라면 믿을만한 부하와 쓸모없는 부하를 구별하기 위해 일부러 어처구니없는 허구의 스토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진실은 가끔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만일 당신이 순수하게 진실된 스토리만 고집한다면 아무도 당신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 국민에게 진실, 오로지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미국 대통령 후보자가 있다면 그는 100% 선거에서 진다. 다른 나라 선거도 마찬가지다. 정직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존경할만한 정신적 행위이지만 선거 승리의 전략은 아니다.

 

일단 어처구니없이 왜곡된 사실과 거짓말을 편안하게 해 버릇한 사람들은 좀 더 영역을 확장하여 나쁜 경제 결정을 내리고, 비생산적 군사전략을 짜고, 효과적 기술 발전을 저해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인류 역사상 허구의 스토리가 늘 진실을 이겼다. 사람들의 합리적 이성의 역량을 비활성화하는 것이 큰 비용이 들더라도, 사회 통합의 이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다. 수 천 년 간 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가끔 진실에 봉사할 것이냐 사회 통합에 봉사할 것이냐를 결정해야만 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허구를 믿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통합시킬 것인가, 아니면 분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어야 할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진실을 말하고 처형되었다. 대부분의 기독교 사제들, 유고 선비들, 공산주의 이념가들은 진실보다 사람들의 통합을 우위에 두었다.

 

결국 사제들, 선비들, 이념가들이 그토록 파워플하게 된 것은 바로 그들이 허구의 스토리에 봉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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