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자신을 바라봐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밀란 쿤데라는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한다. 그리고 어떤 시선을 받으며 살고 싶어 하는가에 따라 네 가지 범주로 나눈다.
첫 번째 범주는 수많은 익명의 시선, 즉 대중의 시선을 갈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중의 관심을 잃으면 인생의 방에 불이 꺼진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두 번째 범주는 자신이 아는 다수의 시선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다. 끊임없이 파티를 열거나 모임을 주도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쿤데라의 관찰에 따르면, 이들은 첫 번째 범주에 속한 사람들보다는 행복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눈들을 언제나 떠올릴 수 있다.
세 번째 범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앞에 항상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첫 번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의 상황만큼 불안하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감길 것이고, 그러면 방에 암흑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범주의 사람들이 있다. 흔하지 않은 범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상상적 시선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몽상가라고 쿤데라는 정의한다.
나는 실로 네 번째 범주에 속하는 듯하다. 독자의 초청으로 도쿄에서 몇 달 지낼 때의 일이다. 다다미방이 아무래도 좁아서 아침 7시만 되면 시부야의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마다에서 컴퓨터를 앞에 놓고 일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타국의 도시, 낯선 카페에서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으나 어느 비 오는 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문장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헛돌기만 하고 있었는데, 문득 고개를 돌려 왼쪽 자리를 보니 니체가 앉아 있었다. 그는 특유의 긴 콧수염을 떨면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자라투스트라는 10년 동안 산에서 은둔하다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창조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이제 막 세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내 오른쪽 자리에는 헤밍웨이가 앉아 자신의 파리 생활을 담은 『내가 사랑한 파리』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곁눈질로 훔쳐보는 내 눈에 이런 문장이 들어왔다. "걱정할 거 없어. 지금까지 써 온 글이니까 이제 곧 쓰게 될 거야. 진실한 문장 하나만 쓰면 돼. 그래,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진실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한번 써 보는 거야." 분명, 그의 의자 옆에 세워진 것은 우산이 아니라 사냥총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맞은편 자리에서는 헤세가 둥근 안경을 쓰고서 가느다란 펜으로 잉크를 찍어 가며 『유리알 유희』를 마무리하고 있고, 그 옆에서는 아일랜드풍 모자를 쓴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을, 그 건너편에서는 찰스 디킨스가 자신이 쓴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단락을 스스로도 만족스러운지 읊조리고 있었다.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월이자 의심의 세월이었다.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도쿄에서 외롭고 불온한 생을 마친 소설가 이상이 저쪽에서 춤추듯 펜을 움직이고, 그 뒤쪽 자리들에 있는 카프카와 도스토옙스키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카페 유리창은 빗방울들로 김이 서리고, 나는 저마다 고도로 집중해 있는 그 위대한 작가들 속에서 잠시 공작새처럼 눈을 깜박이다가 이내 내 글쓰기로 부드럽게 돌아갔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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