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학적 글쓰기: 지식은 감성을 해치는가?
여러분은 이 물음에 어떤 대답을 하실 수 있나요? 흔히 한국의 수능과 비견되는 프랑스 바칼로레아 2023년 철학 트랙 문제입니다. 바칼로레아는 수능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시험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평가 방식이겠네요. 바칼로레아 시험 평가 과목은 프랑스어, 전공 교과목, 철학, 전공 구술시험 등이 있고, 20점 만점 중 10점 이상이면 시험에 통과할 수 있습니다.
바칼로레아는 논술시험으로 10명이 응시하면 10개의 답이 나올 수 있는 시험입니다. 컴퓨터로 채점할 수도 없다 보니 프랑스 정부에서는 채점만을 위해서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데요. 왜 이렇게 소모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지속하고 있을까요?
프랑스 교육의 핵심은 논술 토론입니다. 본질적으로 두 영역은 유사한데요. 어떤 사안에 대해 스스로 논지를 세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대화를 통해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바칼로레아는 그 모든 과정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자신이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민”을 목표로 하는 프랑스 교육철학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왜 시작했는지 그 시작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2. 니콜라 드 콩도르세: 프랑스 공교육의 뿌리를 찾아서
프랑스 공교육을 법제화 한 인물은 쥘 페리(Jules Ferry)입니다. 1879년 2월 교육부 장관 취임 후 1885년 3월 수상의 위치에서 공직을 끝마칠 때까지 초등교육체계를 완성했습니다. 프랑스 전역을 비롯해 프랑코포니 곳곳 그의 이름을 딴 마을, 거리, 기차역 등이 있을 정도라면 페리의 위상을 가늠하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따로 있습니다. 이렇듯 높은 위상의 페리의 교육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요. 바로 ‘니콜라 드 콩도르세(Nicolas de Condorcet)’입니다. 정치인, 교육이론가, 수학자, 철학자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인물로, 특히 1792년 4월 2일 입법의회에서 발표한 공교육에 관한 논문은 후대까지 전해지며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오늘 살펴볼 주요 내용이기도 합니다. 콩도르세의 교육관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활동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콩도르세는 프랑스혁명 초기 인물입니다. 프랑스혁명은 시민의 손으로 직접 왕정시대를 끝냈다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분기점인데요. 하지만 오랜 군주정치의 역사를 단칼에 베어낸 만큼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혁명 발발 2년 후인 1791년, 프랑스 최초 헌법을 바탕으로 푀양파, 자코뱅파, 지롱드 파를 중심으로 한 입법의회가 구성됩니다. 이때 콩도르세가 속한 지롱드 파 내각이 처음으로 출범하게 되지요. 하지만 지롱드 파 내각은 출범한 지 1년 만에 공포정치로 이름을 떨친 자코뱅파 로베스피에르에게 뺏깁니다. 이때 지롱드 파 구성원은 축출당하게 되는데, 콩도르세도 이 시기 도망자 신세로 전락해 결국 죽음을 맞습니다.
연구자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정세가 콩도르세로 하여금 공교육에 관해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1792년 입법회의에서 공교육에 관한 다섯 가지 논문을 발표합니다. 여기에는 시민들이 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 수호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콩도르세의 정신은 논문으로 후대에 남겨져 프랑스 공교육의 기반이 됩니다.
3. 왜 배워야 하는가?
그의 다섯 논문과 연구자들의 저작을 읽다 보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다다르게 됩니다. 콩도르세는 공교육이라는 ‘도구’를 통해 지식을 보편화하고 보다 많은 시민을 계몽시키고자 했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식이 필요할까요? 왜 배워야만 하는 걸까요? 콩도르세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그는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지도이념인 ‘천부인권’을 기반으로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혁명 이전까지 사람들은 줄곧 왕을 비롯한 사제, 법률가, 전사 등 극소수 계급에 지배를 받았습니다. 콩도르세는 이를 두고 ‘무지의 시대에는 강압적 전제정치가 불완전하고 모호한 지식의 전제정치와 결탁했다.’고 말합니다.
종교적 신비, 자연의 비밀, 실용적인 기술의 원리에 무지한 시민은 자본 활동이 신비로운 지식처럼 느껴지고, 이 틈을 ‘간교한 자’들이 노려 ‘더러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며, 무지한 시민은 그리하여 종속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지식의 습득만이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으로부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예속되는 것을 방지하며, 협력 관계로 거듭난다고도 덧붙입니다.
"모든 성인들은 입안 중이거나 막 공포된 새로운 법들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며, 행정의 다양한 부문에서 어떤 조치들이 취해지고 있으며 또 준비되고 있는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법제 체제에 대해서도 언제나 알아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새로운 정치적 문제를 제기할 경우, 또는 누군가가 사회 자체를 새로운 원리들에 따라 재정립하고자 하는 경우, 모든 성인은 그 새로운 문제 제기에 대해 알아야 하며, 새로운 원리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에 대해서도 귀를 열어야 휜다. 사실 그러한 교육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또한 그들로부터 기대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으며, 그들이 우리를 위해 무슨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준비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인류가 야만에서 문명국가로, 무지와 선입견에 뒤따르는 모든 종류의 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진리의 발견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류는 새로운 진리를 통해 무지로부터 비롯된 과오를 ‘보완’ 해 나가며 ‘악’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콩도르세는 시민을 ‘통치의 동반자’로 인식하였으며, 교육을 통해 지식을 쌓아 누구든 언제든지 ‘공직을 감당할 능력’과 ‘악한 권력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 사회가 지어야 할 의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4.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 말하기와 글쓰기
콩도르세는 시민 모두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쇄기 발명 이전과 이후를 두고 각각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인쇄기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가장 중요한 현안들이 말을 통해 결정되었습니다. 대량 복사를 통해 정보를 보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의 장점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죠.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부터 고대 로마의 키케로까지 고대인들은 그렇게 ‘말을 잘하는 방법’에 몰두합니다. 콩도르세는 고대인들이 발화자의 재능과 이성이 최대한 돋보이게 만들어 대중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늘리는데 탁월했다며 말하는 기술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인쇄기 발명 이후 ‘말’이 ‘글’로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그는 연설자의 말과 글이 불일치한다면 설득력을 잃는다고 강조하며,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기술 교육의 보급을 주문합니다. 갖가지 말의 유혹에 맞서 이성을 강화하고, 함정을 제거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바로 ‘글쓰기’라는 것입니다.
콩도르세는 위와 같은 기본이 갖추어진다면 좀 더 나아가, ‘전체를 표현하는 기술’, ‘관념들을 연합하고 분류하는 기술’, ‘적절한 효과를 준비하는 기술’ 등 연마를 통해 진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예문들을 통해 자신의 학생들이 그 찬란한 상상력 또는 정념의 취기 한가운데서 오류를 구분하도록, 진리를 포착하도록, 그리고 그 진리에 매료되어 있을 때도 그것을 과장하지 않도록 훈련시킬 것이다. 그렇게, 달변가가 될 운명이었던 사람들은 오직 진리만을 위해 달변가가 될 것이며, 또 그러한 재능을 갖지 못한 이들도 오직 진리만으로 즐거워하고, 또한 이성을 그 진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즐길 수 있다."
5. 토론해야 하는 이유 – 인간의 뇌는 게으르다
인간의 ‘추론’은 서로 의견을 나누고 다른 사람의 추론을 서로 평가하는 토론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인식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구축된 것인데요.
집단생활을 시작하며 인류는 식량원을 지키기 위해 아군과 적군을 구별해야 했습니다. 소리, 몸짓 등 신호는 다양해졌고, 수집 데이터 점점 늘어납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기준으로 데이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되면 가짜 정보를 필터링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신기하게도 인간은 '인식적 경계(epistemic vigilance)'를 작동시킵니다. 기본적으로는 동료를 신뢰하되 잘못된 정보에 대한 경계심은 유지하는 정보처리 체계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메커니즘이 심화되면 이제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될지도 모릅니다(거짓 부정 false negative). 정상범위에서 심하게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디어의 진위를 의심하고 의문을 가지면서 정보는 정체됩니다(신뢰 병목 현상 trust bottleneck). 정보의 정체는 곧 집단의 위기를 불러오기 때문에 인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냅니다. 바로 ‘논증’입니다.
하지만 ‘나’의 논증은 무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인데요. 인간의 뇌는 게으르고 편향적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본인의 논증대로 본인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를 써내려 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논증은 상당히 불합리한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지심리학자 위고 메르시에는 이 과정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더없이 타당한 시스템이라고 말합니다. 게으르고 편향된 뇌는 본인의 논리를 신속하게 만든 후, 진리 탐구를 위한 인지적 노력은 집단 프로세스에 떠넘기며 본인의 에너지를 절약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한 에너지를 상호 평가 프로세스에 사용하며 다양한 관점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인간은 서로 자기 생각을 나누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려할 만한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 가설에서 허점을 찾아내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 추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면, 반론을 제기하거나 잠재적 위험을 밝혀내지 않으면, 우리는 인식론적 쳇바퀴만 계속 돌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 자신과 논쟁을 하면 우리가 이긴다."
6. 검객의 자세로 부딪치기
프랑스 언론 Le Figaro는 2022년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정당 대표 마린 르 펜의 대담을 평가하는 사설에서 이런 표현을 씁니다. “Le débat d’idées est une passion française” 의역하자면 ‘토론 행위는 프랑스인에게 내재한 집념(내지는 열정)이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대담은 전국적 관심을 끌었는데요. 글쓴이는 이를 두고 데카르트, 볼테르, 시라노를 ‘검객’이라 묘사하며 DNA로 계승되는 프랑스인의 토론에 대한 열정을 시사했습니다. 실제로 프랑스는 CNDP(국가공공토론위원회)라는 기관을 두고 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중대 정책 결정 사항을 국민 토론에 부치고 있고, 전 세계 유사기관 중 의존도가 제일 높을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9일 일론 머스크는 니콜라이 탕겐 노르웨이은행투자관리 CEO와 X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을 예고하며 향후 5년 이내에 AI의 능력이 모든 인간을 초월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누가 더 정답을 빨리 찾느냐의 문제는 그 의미를 잃고 있는데요.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은 기술보다는 도덕과 윤리 문제의 갈림길에 더 자주 서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의 대화와 결속이 아닐까요?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보완’되기를 반복하며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토론 검객’의 DNA가 널리 퍼질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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