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은 나쁜 생활 습관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다양한 질환이 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질환은 환자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워, 이유도 모른 채 피로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국민 100명 중 2~3명이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았다. 여기에 원인을 모른 채 잠을 설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수면 문제를 겪는 사람은 더욱 많을 것이다. 이에 불면을 유발하는 11가지 질환을 살펴보며 숙면을 방해하는 원인을 찾고, ‘불면에서 숙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2023년 수면 장애 환자 8명 중 1명은 수면 무호흡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수면 무호흡증은 자는 동안 일시적으로 호흡이 멈추거나 호흡량이 줄어드는 병이다. 대표적인 증상은 심하게 코를 골다가 갑자기 ‘컥’하는 소리와 함께 숨을 멈추는 것이다.
수면 무호흡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숨을 쉬고 싶은데 ‘못’ 쉬는 것이다. 뇌는 정상적으로 호흡하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혀가 뒤로 밀려 기도를 막거나 목에 살이 쪄서 기도가 좁아지면 물리적으로 숨길이 차단된다. 둘째는 숨을 ‘안’ 쉬는 것이다. 뇌의 호흡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겨 적절한 호흡 신호를 보내지 못하면 호흡하려는 의지 자체가 사라져 무호흡이 발생한다.
수면 무호흡증 환자 대부분은 전자에 해당하는데, 이를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라고 한다. 이비인후과 교수와 함께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어떻게 숙면을 방해하는지 살펴보고, 이것이 건강상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알아본다.
1. 목과 코만의 문제 아냐… 소변 마렵게 하고 역류성 식도염 유발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환자는 대부분 입을 벌리고 코를 골면서 잔다. 이로 인해 목이 건조해지거나 이물감이 느껴져 잠에서 깰 수 있다. 코골이 때문에 발생하는 진동이 목에 통증을 유발하면 숙면을 지속하기 어려울 만큼 불편해질 수도 있다.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은 소화기 계통에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흉강 내 음압이 증가돼 위산이 역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류성 인후두염이나 식도염이 발생하면 가슴과 목 통증 때문에 숙면이 어려울 수 있다. 이비인후과 교수는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있을 경우 지방간염 및 간경변의 위험도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수면 무호흡증은 밤에 자주 소변을 보게 되는 ‘야간 빈뇨’도 유발할 수 있다. 수면 무호흡증이 생기면 배뇨를 위해 수면 중 한 번 이상 깨는 현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증상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수면 무호흡증으로 인해 자다 깨는 것을 반복하면 불면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심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비인후과 교수는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수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해 불면증이 더 악화될 수 있다”며 “이런 경우 병이 계속 악화되고 치료도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2. 호흡 힘드니 산소 공급도 안 돼… 심혈관계에 악영향
호흡을 잘해야 우리 몸 곳곳에 산소를 보내고 이산화탄소는 빼낼 수 있다. 그러나 수면 무호흡증은 원활한 호흡을 방해하고 혈액 속에 산소가 부족해지게 만든다. 그 결과 저산소증 상태가 되면 수면이 중단되는 ‘각성’이 일어난다. 일부 각성은 환자가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자는 내내 훨씬 더 많은 각성이 일어나는데, 이는 정상적인 뇌파 흐름을 끊고 뇌파가 변하게 만든다.
이비인후과 교수는 저산소 상태에서는 세포 노화를 일으키는 ‘활성 산소’ 같은 나쁜 물질이 몸에 쌓이는 등 신경계나 면역계에 독성 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이는 “단순히 잠을 설치는 문제에 그치는 게 아니며, 신경계나 면역계에 손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강조했다.
자는 도중 기도가 막히면 우리 몸은 숨을 쉬고 싶은데 잘 안 쉬어지니 무의식적으로 가슴에 과한 힘을 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흉강 내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변하면 심장에 부담이 가해진다. 이는 혈액 순환을 저해하는 등 심혈관계 질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비인후과 교수는 수면 무호흡증을 치료하지 않았을 경우 다양한 연계 질환이 발병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고혈압 △부정맥 △심근경색 △뇌졸중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저산소증이 반복되면 혈관 내피세포 기능이 손상되고 혈액 응고가 더 잘 일어나 위험해진다”라고 덧붙였다.
3. 정신 질환과 치매 유발…낮 생활도 곤란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은 수면의 양과 질을 모두 떨어뜨려 낮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집중력 저하 △단기 기억력 감소 △반응 속도 저하가 나타나며, 만성 피로로 인해 사회적 활동이 감소한다. 이로 인해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지면 직장 내 다양한 사고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이비인후과 교수는 수면 무호흡증을 치료하지 않을 경우 사회 차원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6년 미국 수면의학회(American Academy of Sleep Medicine)는 미국 내에서 수면 무호흡증을 치료하지 않아 발생한 경제적 손실을 추산했을 때, △작업장 내 사고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65억 달러 △운전자 사고로 인한 부담은 262억 달러 △생산성 저하로 인한 손해는 869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했다. 이처럼 “수면 무호흡증은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큰 경제적 부담을 주는 중요한 질환”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신경 인지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수면 무호흡증 환자는 주의력, 기억력, 시각-공간 지각력 등이 떨어지게 된다. 노인 환자라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경도 인지 장애 및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증가될 수 있다.
이비인후과 교수는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이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수면 부족과 저산소증을 겪게 되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발생해 정신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우울증과 불안장애 위험이 커지는데, 이러한 정신과적 문제가 악화되면 환자의 정서적 안정과 삶의 질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생긴다는 것이다.
4. 당뇨, 암 발생과도 연관…임산부도 특히 주의 필요
수면 무호흡증은 거의 모든 장기에 악영향을 끼친다. 먼저, △천식 △만성 폐쇄성 폐 질환 △폐색전증과 같은 호흡기 관련 질병의 위험도가 증가한다. 당뇨 및 당뇨 합병증 발생률과 성기능 문제 등 내분비계 질환 또한 수면 무호흡증과 연관성이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수면 무호흡증이 암 발병률과도 관련성이 있다는 것이다. 2019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45세 이하 중증 수면무호흡증 환자에서 악성 종양 발생률이 더 높았다. 유방암, 직장암 등 여러 암과 관련하여 다양한 논문에서 연관성이 발견되고 있다. 수면 무호흡증으로 인해 신체 조직에 간헐적인 저산소증이 누적되는 것을 악성 종양 발생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보고도 있다.
임산부의 수면 무호흡증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 등 출산 전후에 생길 수 있는 여러 합병증 발생률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비인후과 교수는 “태아에 직접적으로 끼치는 영향에 있어서는 아직 논란이 있다”라고 부연했다.
5.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수면내시경으로도 검사 가능
환자 스스로는 상태를 알기 어려운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은 병원에서 다양한 검사를 통해 진단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신체 진찰부터 이루어지는데, 물리적으로 숨길을 막을 수 있는 편도와 혀의 크기를 확인하고, 필요하다면 비강 내시경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비중격 만곡증’이나 ‘코폴립(코 내부의 혹)’ 등 기타 질환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
상기도가 막히는 구조적인 원인을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영상학적 검사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다. 측모 두부 방사선 사진 및 CT 촬영을 진행하면 △상기도의 해부학적인 폐쇄 정도 △아데노이드 편도의 비대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부위별로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약물 유도 하 수면내시경(Drug Induced Sleep Endoscopy, DISE)’이란 검사 방식도 활용한다. 이 검사는 진정제를 투여해 수면을 유도하고 실제 수면 중 기도 폐쇄 상태를 주치의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검사다.
상기도는 기다랗고 구부러진 원통 모양이다. 약물 유도 하 수면내시경을 진행하면 상기도의 어느 부분이 좁아져서 수면 무호흡증이 발생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치료와 추후 관리가 달라질 수 있어 중요한 검사다.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환자들은 대사증후군 및 심혈관계 기능 저하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 혈액 검사를 함께 진행하는 경우도 흔하다. 혈액 검사를 통해 저산소증 반복으로 인한 혈색소 증가, 만성 염증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 워치 같은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 기기를 통해 수면무호흡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내원하는 환자도 있다. 이비인후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수면무호흡증 진단의 근간은 수면다원검사”라며 “스마트 기기를 통한 진단이 현실화되려면 더 많은 연구와 데이터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6. 기도 근육도 운동으로 단련 가능…모든 환자에 도움 돼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비인후과 교수는 수술적 치료 방법과 비수술적 치료 방법을 소개했다. 우선 비수술적 방법으로는 양압기 착용을 통한 치료가 있다. 양압기는 산소호흡기처럼 코에 연결되는 마스크를 통해 공기를 주입하는 기계다. 양압기를 통해 호흡기에 압력을 가하면 말랑말랑한 고무 튜브 같은 상기도가 펴지므로 원활히 호흡하고 수면 무호흡증을 완화할 수 있다.
하지만 양압기 적응에 실패하는 환자도 있다. 이런 경우 수술을 통해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을 치료할 수 있다. 편도가 너무 크거나 혀가 너무 두꺼워 기도를 막는 등 해부학적 원인이 자명한 경우에도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이비인후과 교수는 모든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생활 관리 지침으로 세 가지를 소개했다. 첫째는 체중 감량이다. 비만인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환자는 체중 감량 시 기도가 확보되면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소개한 것은 술과 담배를 끊는 생활 습관 교정이다.
마지막으로는 상기도 근 강화 훈련을 추천했다. “혀를 움직이면서 상기도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꾸준히 하면 수면 중 기도 폐쇄가 완화된다”며 “수술처럼 단기간에 드라마틱한 효과를 낼 수는 없지만, 누구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혼자서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치료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3년 국민 100명 중 2~3명이 수면장애로 진료를 받았다. 여기에 원인을 모른 채 잠을 설치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수면 문제를 겪는 사람은 더욱 많을 것이다. 이에 불면을 유발하는 11가지 질환을 살펴보며 숙면을 방해하는 원인을 찾고, ‘불면에서 숙면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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