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증은 ‘원하지 않아도 잠드는 병’이다. 그래서 기면증 환자는 불면증과 거리가 멀 것 같지만, 실상은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낮잠을 많이 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기면증 환자가 겪는 야간 수면 불안성은 ‘오렉신’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부족으로 인한 증상이다. 숙면을 취하기 어려워 우울증, 불안장애 등을 겪기 쉽고, 낮에는 심한 졸음이 발생한다. 기면증 환자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신경과 교수와 함께 기면증이 숙면을 방해하는 이유, 치료를 위한 기면증 진단 방법 그리고 일상생활 개선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1. 밤에 자꾸 깨게 되는 기면증… 원인은 뇌 기능 문제
국내에서 기면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은 2019년 5,528명에서 2023년 7,917명으로 43.22% 증가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기면증은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드는 ‘수면 발작’이 주요 증상인 병이다. 수면 발작은 뇌 기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중추신경계에는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때 이를 유지해 주는 ‘오렉신’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 물질이 부족하면 자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도 갑자기 잠에 빠져들 수 있다.
오렉신은 잠에 들고 깨는 일을 안정화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오렉신이 부족해지면 밤에 안정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주 깨게 된다. 이렇게 수면과 각성의 전환을 빈번히 겪으면 수면 구조가 불안정해진다. 오렉신 외 다양한 신경 전달 물질들의 조화도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오렉신이 부족하면 이러한 기타 신경 전달 물질들 간에 불균형이 발생한다. 이는 기면증 환자의 수면 불안성을 추가적으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기면증 환자의 야간 수면은 언뜻 양이 충분해 보일 수 있으나 질은 떨어진다. 따라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정상인보다 힘들고,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낮에는 심한 졸음으로 인해서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계획적인 수면을 취하거나 카페인 등 과도한 각성제를 사용하면 더욱 숙면과는 멀어지게 된다. 신경과 교수는 “환자 분들이 오후 늦게 깨어 있기 위해 기면증 치료약을 늦게 복용하시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경우에도 야간 수면을 방해하게 돼 좋지 않다”라고 경고했다.
기면증의 또 다른 주요 증상으로 알려져 있는 ‘수면 마비(가위눌림)’도 기면증 환자가 수면 중 깨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신경과 교수는 “수면마비는 기면병 환자 중 일부에서만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수면마비 자체가 수면 구조 불안성을 유발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2. 기면증 환자 절반이 우울증, 불안장애 경험
신경과 교수는 기면증으로 인해 숙면하지 못할 때 우리 몸에 발생하는 악영향과 연계 질환도 소개했다. 먼저, 수면 구조가 불안정해지고 질 좋은 수면을 충분히 취할 수 없게 되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저하될 수 있다. 그 영향으로 학습과 업무 수행능력이 떨어지고, 업무 중 실수가 늘어나게 된다.
다음으로는 정신 질환 발생 위험 증가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신경과 교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기면병 환자의 약 절반에서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며 “수면부족으로 인해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균형이 깨져서 우울감이 증가되는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설명했다. 기면증 환자는 과도한 졸음으로 인해 ‘게으른 사람’으로 인식되는 등 사회적으로 위축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부정적 경험 또한 정신 질환과 연결될 수 있다. 신경과 교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대인관계를 악화해 사회생활을 더욱 방해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기면증은 이 외에도 섭식장애, ADHD, 드물게는 조현병과의 관련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면증으로 인한 수면 구조 불안성은 비만과 당뇨 위험도 높인다. 깊은 수면은 줄어들고 렘수면이 증가해 식욕 억제 호르몬인 ‘렙틴’ 분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식욕을 돋우는 호르몬인 ‘그렐린’은 증가해 체중 증가 및 관련 대사 장애 위험이 높아진다. 신경과 교수는 “기면증 환자 분들은 과체중을 경험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인슐린 저항성 증가로 인해 제2형 당뇨병 위험도 상승한다”라고 설명했다.
△야간 수면분절 △각성증가 △수면 질 저하는 면역 체계를 악화하고 심혈관 질환 위험도 키운다. 이 외에 다양한 신체반응, 호르몬 불균형 등도 유발할 수 있어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3. 밤과 낮의 수면을 모두 분석해 진단… 최소 2주 간 사전 준비 필요
기면증은 야간수면다원 검사, 다중입면잠복기 검사 등 두 가지 검사를 통해 진단할 수 있다. 먼저 야간수면다원 검사를 진행한 뒤, 뚜렷한 원인 인자가 없다면 다음날 다중입면잠복기 검사를 시행한다.
야간수면다원 검사는 최소 2주 간 7시간 이상 규칙적인 수면을 취한 후에 진행한다.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 또한 미리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야간수면다원 검사를 통해 환자가 주간 졸림증 유발 질환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를 먼저 확인한다.
다중입면잠복기 검사는 환자가 낮잠을 자는 모습을 분석해 ‘얼마나 병적으로 졸려하는지’ 판단하는 검사다. 2시간 간격으로 4-5번 낮잠 기회를 주고, 각 차례에 얼마나 빨리 잠에 드는지, 잠에 들고 나서 얼마나 빠르게 렘수면이 나타나는지 확인한다. 불을 끄고 뇌파를 통해서 잠에 드는 시간을 ‘수면 잠복기’라고 하는데, 4-5회로 진행되는 낮잠 검사의 평균 수면 잠복기가 8분 이하면 병적인 졸음으로 판단한다.
신경과 교수는 “보통 잠에 들고 나서 90분에서 120분 사이에 렘수면이 나타나는데, 기면병 환자는 15분 이내에 빠르게 렘수면이 시작된다”며 “4-5번 검사 중 2번 이상 빠른 렘수면이 나오면 기면증으로 진단한다”라고 설명했다. 신경과 교수가 검사 횟수를 4-5번으로 설명한 이유는 4번의 검사만으로 진단 기준에 적합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 5번째 검사를 생략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빠른 렘수면 횟수를 셀 때는 만약 야간수면다원검사에서 빠른 렘수면이 나온다면 다중입면잠복기 검사 횟수에 더해 계산한다.
오렉신의 양이 병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제1형 기면증 진단에서는 뇌척수액 속 오렉신의 양을 직접 측정하는 검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수면다원검사와 다중입면잠복기 검사를 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 이 검사가 유용할 수 있다. 신경과 교수는 “현재 국내에는 뇌척수액 내 오렉신 양을 측정해 주는 검사실이 없다”며 “외국으로 검체를 보내 검사 결과를 확인한다”라고 말했다.
4. 낮잠은 짧게 전략적으로… 자기 전 미온수 샤워도 숙면에 도움
기면증은 중추신경 흥분제, 수면제 등 환자에 맞는 약물을 처방해 치료한다. 신경과 교수는 약물 처방 외에 생활 관리 측면에서 기면증 환자의 야간 수면 개선에 도움 되는 것들을 소개했다.
먼저,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하면서 낮잠은 전략적, 규칙적으로 자야 한다. 환자 스스로가 언제 가장 졸린 지, 언제 낮잠을 잘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 등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 기면증 환자는 대개 짧은 낮잠으로도 각성의 수준이 호전된다. 낮잠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에는 오히려 전체적인 수면 패턴을 망가뜨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신경과 교수가 권장하는 낮잠 시간은 15-20분 이내다.
밤늦게 카페인 등 각성효과를 가진 음료수나 음식물 섭취는 피해야 한다. 자기 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면 숙면을 유도할 수 있다. 신경과 교수는 “기면증 환자는 신체 활동량이 떨어질 수 있다”며 “주간에 규칙적인 운동을 권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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