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특별한 전시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어요.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주얼리의 근현대사를 총망라한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인데요.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은 고가의 장신구를 넘어 시간이라는 주제를 축으로 소재의 변신과 색채, 형태와 디자인, 범세계적인 호기심의 관점으로 주얼리를 탐구하는 만큼 시공간을 초월한 우주적 대화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2019년 도쿄국립신미술관에서 동일 주제의 전시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 이번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소식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미스터리 클락과 프리즘 클락이 전시된 프롤로그 방을 지나면 첫 번째 챕터 ‘소재의 변신과 색채’ 공간이 펼쳐진다. 입구에서부터 다이아몬드 티아라와 목걸이, 브로치가 환상적인 빛의 연주를 선보이는데, 일명 ‘벨에포크(아름다운 시대, 1890~1914년)’로 불리던 시기에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그 순백의 빛이 선사하는 황홀한 퍼포먼스에 빠져들다 보면, 그 어느 때보다 탐미적이던 120년 전으로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1. 아름다운 시대의 꽃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
왜 ‘아름다운 시대’였을까. 독일제국이 탄생한 187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유럽에서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과거를 뒤로하고 전쟁과 내전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했다. 이 기간 동안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럽의 생산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성장했다.
철도, 자동차, 여객선의 등장으로 일반 대중의 생활 반경이 급격히 확장되었고, 전기와 전화 같은 혁신적인 발명품은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선사했다. 밤거리는 어둡지 않았고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손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인류에게 진정 아름다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파리는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였고 부유층이 원한 것은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였다.
때마침 남아프리카 광산의 개발과 연마기술의 발전으로 공급이 증가하면서 다이아몬드는 나날이 눈부신 광채를 더해갔다. 무엇보다 플래티넘을 주얼리에 사용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당시 까르띠에를 이끌고 있던 루이 까르띠에는 부유층의 세심하고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안착시킬 최적의 금속으로 플래티넘을 낙점했다. 물론 플래티넘 개발에 가장 많은 시간과 열정, 자본을 투자한 것도 그였다. 당시 까르띠에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하던 정교한 갈란드 스타일(화환 양식)도 플래티넘 덕분에 가능했다.
변색되지 않는 것은 물론 금보다 단단하고 강도가 높아 최소한의 양으로도 다이아몬드를 충분히 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식되지 않아 오랫동안 변질 없이 사용될 수 있었다. 플래티넘은 녹는점이 1768℃로 금(1063℃) 보다 훨씬 높아 오랫동안 가공 자체가 어려웠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으로 높은 불꽃 온도를 내는 특수 용접기를 개발하면서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셔츠용 단추 같은 작은 제품들에만 쓰다가 1880년에는 넥타이핀과 귀걸이에도 사용했다.
플래티넘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제품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처음 선보였다. 하지만 1900년 이전에 제작된 주얼리에는 플래티넘 위에 금을 보강한 경우가 많았다. 보수적인 장인들이 은 위에 금을 덧대던 것처럼 플래티넘에도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점차 플래티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되면서 주얼리의 디자인과 세팅은 더없이 섬세하고 가벼워졌다. 이번 까르띠에 전시의 첫 번째 챕터인 ‘소재의 변신과 색채’의 핵심도 단연 플래티넘이다.
2. 티아라를 쓴 그녀들은 누구인가
벨에포크의 화려함을 가장 극대화한 티아라는 1880년대 초반부터 1920년대까지 유행했다. 플래티넘을 자유롭게 활용한 1900년에서 1915년 사이에 특히 많이 제작되었다. 사회가 변하면서 과거 왕족들의 전유물이던 티아라도 용도와 의미가 달라졌다. 물론 왕실에서는 여전히 엄격한 예법에 맞게 착용했지만, 은행가나 산업가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티아라를 구입했다.
산업혁명으로 수공업이 기계공업으로 변화하고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벨에포크 시대에는 작위보다 자본의 소유가 더 중요해졌다. 미국의 신진 부호들은 산업과 금융 시장의 선두에 올라 상속 재산이 현저히 줄어든 유럽의 전통적인 귀족 가문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꾀했다. 이들의 결혼식을 위해 엄청난 양의 티아라가 제작되었고 최신 발명품인 전기는 다이아몬드의 광채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전기 조명장치인 백열등 아래에서 다이아몬드의 광채가 극대화되도록 연마했기 때문에 가스등 아래에서 보는 광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따라서 티아라와 초커, 목걸이를 함께 착용하고 가슴에는 ‘스터머커 브로치(드방 드 코사지)’까지 장식한 여인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이번 까르띠에 전시에도 다이아몬드와 플래티넘으로 제작된 브로치 몇 점이 전시 중인데, 사용된 소재와 더불어 거대한 사이즈도 관전 포인트다.
이토록 탐미적이고 평화롭고 풍요로웠던 시대에 플래티넘의 뛰어난 물성은 주얼리 디자인을 한층 격상시켰다. 하지만 주얼리에 사용되는 금속 중 가장 고가로 대접받던 지난 100년간의 명성이 무색하게도, 현재는 금 시세가 플래티넘보다 훨씬 높은 상황이다. 그야말로 금값이 실제 ‘금값’이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여전히 플래티넘은 금보다 희귀하다.
‘까르띠에, 시간의 결정’ 전시에 몰입하다 보면, 주얼리뿐 아니라 스타일과 문화, 디자인과 공예, 건축 등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 300여 점의 전시품을 둘러본 후에는 머리도 식힐 겸 시네마 룸에서 메이킹 영상을 시청할 것을 추천한다. 완성된 작품을 관람하는 것과는 또 다른 볼거리와 인사이트가 숨어 있다. 전시는 6월 3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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